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10호 - 진진영 인터뷰
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10호 진진영 Interview
편집: 디자인사학회
인터뷰: 진진영(Jinyoung Anna Jin)
진행: 문희채
발행: 2024년 5월 15일
-
뉴욕 스토니 브룩대학 찰스 왕 센터(Stony Brook University, Charles B. Wang Center)의 진진영(Jinyoung Anna Jin) 관장님과 다양한 아시아 시각문화를 소개하는 센터의 전시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_
Q1. 스토니 브룩대학 찰스 왕 센터에서는 일반 미술관에서와 같은 미술사를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닌 시각문화 전반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술과 시각문화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게 전시로 나타났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스토니 브룩대학의 찰스 왕 센터는 자체 소장품이 없어서 전시는 언제나 외부의 협조를 기반으로 해요. 그래서 매번 새로운 기획에 맞춰 다른 미술관의 소장품을 빌리거나, 다양한 시각문화의 요소를 조합해 전시를 마련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미술관에 어떤 작품들이 잠들어 있는지, 어떤 주제로 그들을 깨워 이야기를 엮을지 고민하죠. 이를 위해 여러 미술관의 큐레이터들과 끊임없는 소통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특히 매년 열리는 American Curator for Asian Art 모임은 동아시아를 넘어 아시아 전역의 미술 큐레이터들이 한데 모여, 수장고 속 모호한 유래의 작품들을 서로 소개하며 그것이 어쩌면 더 큰 작품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이 모임에서는 각자의 박물관에 숨겨진 유물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연구할 수 있는 연대를 만드는 거죠
예컨대, 말총으로 만들어진 조선의 전통 모자와 서양의 중절모자 형태가 어우러진, 메사추세츠주 피바디 에섹스 뮤지엄(Peabody Essex Museum)에 소장된 조선 말기 유물은 마치 서양과 동양이 손을 맞잡은 듯한 하이브리드 디자인을 선보입니다. 이런 특성을 지닌 유물들을 모아 전시를 기획하겠다는 제 계획을 공유하면, 여러 박물관에서 “우리 박물관에도 이런 유물이 있다”며 정보를 나누는 것이 이 모임의 큰 매력입니다. 건축, 도자, 가구, 의상 등 다양한 소재에서 나타나는 이런 하이브리드 형태의 물건들이 어떻게 소비되었는지, 동서양의 문화 교류를 살펴보는 전시를 현재 준비 중입니다.
Q2. 미국에서 아시아 문화를 콘텐츠로 다루고 계시는데요, 타자의 시선으로 본 아시아, 한국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A. 찰스 왕 센터에서 저는 아시아의 다채로운 문화를 전시로 소개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문화가 아시아에서 유독 특별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각양각색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도 공통적인 공감대를 찾아내어 관람객이 전시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접근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영국박물관 소장품 중 한국 도자요강에 관한 짧은 비디오를 제작했습니다. 이 비디오는 단순히 한국 도자의 우수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서양 도자기와 비교해가며 두 문화가 어떻게 서로 다르면서도 어떤 점에서 비슷한지를 조명하는, 보다 넓은 시각을 제공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문화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 차이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관람객에게 다가가는 것이죠. (Korean Art Alive: From Privy to Patrimony: Korean Chamber Pots)
예전에 한국의 모자 전시를 했을 때, 많은 한국인들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덕분에 한국의 남성 갓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워낙 광활해서 어떤 지역에서는 한국 문화에 열광할지 몰라도 대체로 아시아 문화는 여전히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었죠. 이 전시는 한국을 단순한 미개한 나라로 여겼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이 실제로는 얼마나 정교하고 섬세한 예절과 공예품을 가진 나라였는지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영국이 차 문화를 지니고 있듯, 한국 또한 그만큼의 문화적 깊이와 역사를 지녔음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전시의 오프닝에는 참석자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모자를 쓰고 오는 것이 드레스 코드였습니다. 야구모자를 눌러쓴 이들, 군인 모자를 당당히 착용한 사람들, 그리고 화려한 파티용 모자를 고른 이들까지, 각양각색의 모자를 쓴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이야기와 개성을 뽐냈습니다. 이들은 전시장을 거닐며 조선 시대의 모자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폈습니다. 계급, 직업, 나이, 성별에 따라 다양하게 디자인된 모자들 앞에서, 참석자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모자와는 또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모자들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호 작용을 통해 전시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참여자들 간의 소통과 공감대 형성의 장이 되었습니다.
Q3. 한국의 디자인사학 연구에 제언하고 싶으신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A. 한국 디자인의 역사와 그 배경을 다양한 시대와 문화적 맥락에서 깊이 있게 파고들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제 시대의 디자인을 연구하면서 동아시아와의 비교 분석을 시도한다면, 그 시대의 식민지 상황을 훨씬 넓은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카자흐스탄의 작가 전시를 한 적이 있는데, 카자흐스탄은 구소련의 일부였다가, 1991년 독립한 나라입니다. 이곳의 독립 후 사회적, 문화적 가치 변화는 한국의 탈식민지 현상과 많은 유사점을 보여 줍니다.
이와 같이, 과거와 현재, 여러 문화적 배경을 넘나들며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비록 일차 사료가 부족하거나 이미 연구가 마무리된 것처럼 보이는 주제라 할지라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연구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동시에, 이미 알려진 지식에 새로운 해석을 더하며, 한국 디자인이 지니고 있는 다층적인 역사와 그 속의 미묘한 의미들을 더욱 깊이 있게 탐색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