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3호 - Feature Interview
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3호 Feature Interview
편집: 문희채
인터뷰: 강현주
발행: 2023년 7월 15일
Q. 선생님의 많은 연구가 인물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물사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20세기 중·후반 시기에 활동한 한국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 인물 연구를 하고 있지만 개별 디자이너의 전기(biography)나 작가론(monograph)을 쓰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는 아닙니다. 이보다는 한국디자인사라는 구조를 이루는 분자 혹은 요소로서 디자이너 개개인의 삶과 작품 및 활동을 고찰해나가려는 것이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동시대 디자이너들 사이의 상호 관계나 디자인 생태계 형성에 미친 영향 등에 보다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더불어 디자인 개념 및 제도의 변천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즉 한국디자인사의 주제 및 특징을 발견하기 위해 인물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죠.
저는 스스로를 88서울올림픽 디자인 키즈라고 여기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던 해인 1981년에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제가 미대에 가서 디자인을 전공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데 있어서 88서울올림픽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84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1988년에 졸업할 때까지 김교만, 조영제, 양승춘 세 분의 전공 교수 모두 88서울올림픽 관련 활동들로 분주하셨습니다. 스웨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인하대학교에 재직하며 서울대학교에도 출강하던 1999년에 대학원 강의를 하면서 88서울올림픽 디자인전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조영제 교수가 곧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1998년에 이미 퇴임한 민철홍 교수와 2000년에 퇴임 예정인 조영제 교수 두 분을 모시고 인터뷰하는 시간을 갖고 그 내용을 정리해 『디자인네트』 지 2000년 7월호에 「한국 모던 디자인 1세대와의 대화: 민철홍 · 조영제」라는 글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사회사적 디자인사 연구를 위한 방법론 모색」(2005)을 쓰면서 니콜라우스 페브스너 이래 이어진 디자이너 중심의 디자인사 서술 방식과 이를 비판하며 사회사적 관점의 디자인사를 주장한 에이드리언 포티의 디자인사 서술 방식을 비교 검토했는데 이 논문의 연구 대상은 일상문화에 대해 사회사적 접근을 시도한 전시 사례들이었지만 연구를 진행하면서 서구와 달리 우리의 경우에는 비판적으로 검토할 만한 디자이너 중심의 디자인사 서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디자이너와 디자인 결과물을 중심에 놓는 디자인사 서술 방식에는 분명 한계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디자이너들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인물 연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Q. 인물사 연구 중에도 조영제 선생님과의 대담집을 비롯해 구술사 연구 성과도 있습니다. 구술사 연구의 특징과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있어서 구술사 연구는 실을 만드는 일종의 방적 과정이고 한국디자인사 서술은 그 실을 모아서 옷감을 만드는 직조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구술 채록 과정을 통해 알게 된 디자이너 개개인의 생애사를 씨줄로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흐름과 사회 변화의 흔적들을 날줄 삼아 해방 이후 1990년대 말까지 20세기 동안 한국 그래픽 디자인 분야가 전문화·제도화되는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채록된 구술 내용은 개인의 주관적 기억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여러 다른 자료들과 교차 검토해가며 재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연구자가 채록된 내용의 맥락에 개입해 적극적인 방식으로 구술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술자와의 친밀하고 신뢰성 있는 라포 형성(rapport building)이 중요합니다. 또한 구술자가 언급한 내용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억하지 못해 미처 언급하지 않은 것이나 왜곡되게 기억하고 있는 측면은 없는지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디자인사 수첩 - 한국의 폴 랜드, 조영제를 인터뷰하다』는 2010년에 출간이 되었지만 근간이 된 첫 인터뷰는 1999년에, 그리고 단행본 출간을 위한 본격적인 녹취는 2007년부터 약 3년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책 출간을 앞두고 조영제 교수에게 에릭 홉스봄의 자서전인 『미완의 시대』(2002) 머리말을 보여드렸더니 이 글이 인터뷰 진행 중 자신이 이야기의 수위를 조절하던 점을 너무도 분명하고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어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얽혀 있는 문제에 대해서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으면 그것 때문에 억울하게 상처를 받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죽은 다음에 전기를 쓰는 사람이 다루어야 할 영역이다. … 지식인의 자서전은 그 사람의 생각, 태도, 행동에 대한 기록을 담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이 한낱 변호로 끝나서는 안 된다. … 역사가 내 정견을 평가할 것이고 독자가 내 책을 평가할 것이다. 내가 얻으려는 것은 역사적 이해이지 동의나 승인, 연민이 아니다. … 역사는 일어난 일을 밖에서 기록하는 것이고 회고록은 일어난 일을 안에서 기록하는 것이다.” (에릭 홉스봄의 『미완의 시대』 머리말 중에서)
당시 제가 좋아했던 또 한 권의 책은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2003)였는데 이 책은 팔순에 접어든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자신의 학문 인생을 회고한 책입니다. 책 제목인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는 멀리서 대상을 관찰하는 한편, 현장 속으로 가까이 들어가기도 해야 하는 인류학자의 이중적인 운명을 의미하는 동시에 레비스트로스가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선에도 적용된다고 합니다. 구술사 연구를 할 때도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함께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다수를 바꾸는 소수의 심리학』(2010)의 저자인 사회심리학자 세르주 모스코비치는 ‘생각과 주도성을 아끼지 않으면서 새로운 경향성을 표현하거나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능동적인 개인이나 집단이고 이들에게 공통적인 것은 창조성, 다양성, 자신만의 삶과 사유에 대한 욕구이자 사회적 생명력’이라고 했는데 구술 녹취를 하다 보면 연구 대상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생애주기에서 자신의 능력과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특정 시기를 발견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Q. 한국디자인사 연구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제언을 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A. 한국디자인사를 연구하는 목적과 방법은 연구자마다 각자 다를 수 있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반화해서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제 경험에 기초해 한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는 것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한국디자인사 연구자로서 2022년은 매우 뜻깊은 해였습니다. 그 이유는 「한홍택 디자인의 특징과 의미: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전사(前史)」(2012)라는 논문을 쓴 지 10여 년 만에 한홍택이 디자인한 광고물, 인쇄물, 포스터, 삽화 등의 원본과 회화, 드로잉 작품 등 자료 400여 점이 그의 화구와 유품 및 문헌자료 300여 점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수집되어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 전(2022.11.23.~2023.03.26.)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홍택 논문을 쓰게 된 동기는 『한국 디자인사 수첩 - 한국의 폴 랜드, 조영제를 인터뷰하다』(2010)를 출간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자료실에서 우연히 『한홍택 작품집』(1988)을 발견하고 그의 생애와 작품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한홍택 생전에 발간된 이 작품집에는 1939년 일본 도쿄도안전문학원 졸업 작품에서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의 그래픽 디자인 작품이 회화 작품과 함께 다수 실려 있었는데 거의 처음 보는 작품들이라는 점과 그 양이 방대하고 질적 수준이 높다는 데 무척 놀랐습니다. 조영제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상공미전 출범 당시 서로 입장이 달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했지만 실제 한홍택의 생애가 어떠했고 어떤 작품이 있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국디자인사 연구자로서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논문에 이어 네이버캐스트 디자이너 열전(2014)에 「한홍택, 한국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서막」이라는 글을 쓴 후 후속 연구를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에 갑자기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김경선 교수로부터 연락을 받고 코리아디자인헤리티지 블로그를 운영해온 김성천 CDR 대표와 함께 한홍택 선생의 유족인 한운성 교수를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친에 관한 논문을 써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한편으로는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전사(前史)’라고 부제를 단 것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히고 부친의 작품을 직접 보여주고 싶어서 연락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한홍택 작품집』에 소개된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을 수십 년간 소장해오고 있었는데 가능하다면 디자인 관련 기관에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도 밝혔습니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의 이현주 학예연구사의 조언과 도움으로 기증 및 수집 절차를 밟아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 전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이유는 이 사례가 한국디자인사 연구와 관련해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의 역사』에서 존 A. 워커는 디자인 담론 수준과 디자인사 연구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디자이너에 의한 디자인 작품, 개념, 방법 및 디자이너가 사용한 이론을 레벨 1로, 디자인에 관한 기술(記述)과 이미지의 메타 담론을 레벨 2로, 레벨 1과 레벨 2에 대한 디자인사가의 메타-메타 담론을 레벨 3으로, 그리고 디자인사 편찬에 관한 메타-메타-메타 담론을 레벨 4로 구분했습니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한홍택이 창작한 디자인 작품과 그가 직접 쓴 글은 레벨 1에 해당하고, 한홍택선생 작품집 발간 추진위원회의 『한홍택 작품집』은 레벨 2, 제가 쓴 「한홍택 디자인의 특징과 의미: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전사(前史)」 논문은 레벨 3,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의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 전과 전시 도록은 레벨 4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커는 디자인에 있어서 전경(디자이너의 삶과 디자인 작품 및 활동)과 후경(사회문화적 맥락과 양상)의 관계는 역사 속에서 늘 일종의 ‘자리바꿈의 관계로 얽힌 과정’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으며, 그 둘 사이에는 ‘실질적이며 복잡한 관계망’이 존재하고, 또 그 ‘중개과정은 그 자체가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또 역사적으로 변질된다’고 말했는데 한홍택 사례는 한국디자인사에서 이러한 관계를 실제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국디자인사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워커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레벨 1에서 레벨 4까지 각 단계가 활성화되어 한국디자인사 서술이 보다 풍부하고 다양해지게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디자인사 연구자, 대학, 학회, 잡지사, 출판사, 미술관/박물관, 진흥기관 등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야 하고요. 한국디자인사 연구를 하는데 있어서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고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너무 이상적인 답변을 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면서 당면한 문제들을 그때그때 힘을 모아 하나씩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씀드려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디자인사학회의 출범이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하며 한국디자인사 연구의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