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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3호 - Gallery Interview
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3호 민구홍 Gallery Interview 편집: 디자인사학회 인터뷰: 민구홍 발행: 2023년 7월 15일
민구홍 디자이너 인터뷰 Q. 핸드메이드 웹은 무엇인가요? A. ‘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은 캐나다의 미술가 J. R. 카펜터(J. R. Carpenter)가 처음 제안한 용어로, 2016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수학하던 시절 처음 접했습니다. ‘핸드메이드’는 대개 기계가 아닌 손이나 단순한 도구를 이용해 만든 물건을 가리킵니다. 물건의 양상은 무척 다양합니다. 아주 느슨하기도 하고, 아주 정교하기도 하죠. 핸드메이드 웹은 사전에 구축된 프레임워크나 콘텐츠 관리 시스템(Content Management System, CMS) 대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 CSS(Cascading Style Sheets),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JS) 같은 기본적인 언어에 집중해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기업이 아닌 개인이 만들어 유지하는 웹사이트, 얼핏 무용해 보이는 웹사이트, 읽기, 쓰기, 디자인, 소유권, 개인 정보 보호 등과 관련한 관습에 도전하는 웹사이트를 둘러싼 웹의 한 국면이기도 합니다. 작고, 느긋하고, 느닷없다는 점이 핸드메이드 웹의 매력입니다. 소셜 미디어를 위시한 웹 2.0이 도래하기 전까지 웹은 그 자체로 핸드메이드 웹이었고요. 요컨대 핸드메이드 웹은 노스탤지어라기보다는 오늘날 지나치게 빠르고 상업화한 웹을 향한 불만 섞인 경쾌한 질문입니다. Q.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핸드메이드 웹에 주목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A. 1990년대 초 일반에 웹이 공개된 이래 웹은 현실과 밀접해지고, 어떤 차원에서는 이미 현실을 대체했습니다. 덩달아 웹사이트를 만드는 방법은 갈수록 다양하고 복잡해집니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 자체가 무척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죠. 2021년 미국의 프루트풀 스쿨(Fruitul School)에서 발표한 「프루트풀 프레젠테이션」(Fruitful Presentation)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는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다.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할 일이 많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핸드메이드 웹에 주목하는 까닭은, 달리 말해 핸드메이드 웹에 매력을 느끼는 까닭은 웹사이트를 만드는 가장 쉬운 길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핸드메이드 웹은 잠시 잊힌, index.html 파일 하나만으로도 웹사이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Q. 핸드메이드 웹의 철학과 기술의 변화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A. 제가 좋아하는 웹 호스팅 서비스로, 핸드메이드 웹의 근원지였던 『지오시티』(Geocities)의 정신을 계승한 『네오시티』(Neocities)를 꼽습니다. 이곳만 둘러봐도, 핸드메이드 웹의 정신으로 웹사이트를 만들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늘고 있죠. 이는 기술 자체보다 어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한 까닭입니다. Q.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디지털 세상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영감을 준 아날로그 도구가 있나요? A. 아무래도 ‘말’(word)이겠죠. 돌이켜보면 이는 제가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까닭과 상통합니다. 별다른 도구에 기대지 않고, 말의 집합만으로 완결성을 지니며 크고 작은 세계를 구축할 수 있으니까요. 말을 다루는 방식은 또 다른 말로서 컴퓨터 언어를 다루는 코딩(coding)에서 다시 구부러집니다. 코딩이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인 까닭입니다. Q. 핸드메이드 웹과 관련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 몇 가지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거의 모든 제품에는 핸드메이드 웹의 정신이 스며 있습니다. 다음을 참고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가운데 몇 가지는 2022년 부암동에 자리한 갤러리인 프라이머리 프랙티스(Primary Practice)에서 열린 『흥미를 느낄지 모를 누군가에게』(To Whom It May Concern)에 소개되기도 했죠. Q. 「장영혜 중공업 귀중」이나 「한국 코카-콜라 귀중」에서는 단막의 내러티브가 나열되는 방식이 유희적인 풍자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짧게 끊어진 문장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A.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등장한 이래 콘텐츠를 소비하는 국면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단말기가 책보다 작아진 만큼 덩달아 텍스트 길이도 짧아졌고요. 누군가는 사람들이 긴 글을 읽기 어려워졌다고 푸념하기도 하죠.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언어가 변화하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몇몇 제품에서 문장을 짧게 끊어 드러내는 시도는 언어가 소비되는 환경에 편승한 결과입니다. 누군가는 소리 없는 랩처럼 읽힌다고 하죠. 이 또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존경하는 장영혜 중공업(Young-hae Chang Heavy Industries, https://yhchang.com)을 본받은 결과임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Q. 기술은 지금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발전합니다. 그럴수록 로테크라 부를 수 있는 지점 또한 옮겨갈 것입니다. 어느 지점까지는 작업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디지털 기술이 있나요? 또는 이것만큼은 적용하고 싶지 않은 기술은 무엇인가요? A. 기술을 활용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새로운 기술을 재빨리 익혀 작업에 적용하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드릴이나 호미로 밑바닥을 확장하며 기본적인 기술을 탐구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두 번째입니다만, 그렇다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데 엄격하게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바입니다. “필요하다면 기꺼이!” 다만, 기술 자체에 함몰되는 상황만큼은 경계하려 합니다. 기술은 이따금 지나치게 매력적인 까닭에 자칫하면 정작 하고픈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결과적으로 기술만 남기 쉬우니까요. Q. 디자이너가 아닌 편집자의 관점에서 웹 언어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시도가 흥미롭습니다. 오늘날 현실에서 가장 질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국내 디자인계에는 어떤 질서가 필요할까요? 또는 질서를 어지럽히는 시도가 필요할까요? A. 워크룸에서 안그라픽스 랩(약칭 및 통칭 ‘AG 랩’)으로 자리를 옮긴 뒤로, 안타깝게도 오프라인 출판물을 편집하는 상황은 줄어들었지만, 저를 둘러싼 모든 일에 도저한 에디터십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저는 무엇보다 ‘편집자’라는 직함을 좋아합니다. 저는 질서 자체보다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에 흥미를 느낍니다. 그런 점에서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에서 핸드메이드 웹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웹사이트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 결과는 가지런할 수도, 엉망진창일 수도 있겠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이 즐겁다면 아무래도 좋겠습니다. 이 과정에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가 이바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고요. Q. 「새로운 질서」뿐 아니라 여러 워크숍에서 전달하고픈 가장 중요한 개념은 무엇인가요? A. 디자인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콘텐츠가 한 뼘, 아니 1픽셀 정도는 더 중요합니다. 즉, 결과물이 하나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이전에 일단 ‘무엇‘에 집중해보려는 태도입니다. 이는 단 한 번이라도 백지 상태에서 웹사이트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죠. 콘텐츠가 없다면 HTML 태그로 마크업을 할 수도, 나아가 CSS로 HTML 요소를 선택할 수도 없으니까요. 비단 웹사이트를 만드는 과정에서뿐일까요? ‘무엇’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우선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자신이 좋아하는 것 또는 싫어하는 것, 즉 자신의 관심사를 가상의 모눈종이 위에 놓고 촘촘히 들여다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어떻게’는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질서」의 첫 번째 또는 마지막 숙제가 자신을 소개하는 한 페이지짜리 웹사이트 만드는 일인 건 그래서입니다. 민구홍 중앙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시적 연산을 공부했다. 안그라픽스와 워크룸에서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한 한편, 1인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하며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에서 활동한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에서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의 관점으로 코딩을 가르친다. 지은 책으로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 『국립현대미술관 출판 지침』(공저, 국립현대미술관, 2018)가, 옮긴 책으로 『세상은 무슨 색일까요?』(브와포레, 2023),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작업실유령, 2017)가 있다. 앞선 실천을 바탕으로 2022년 2월 22일부터 안그라픽스 랩(약칭 및 통칭 ‘AG 랩’) 디렉터로 일한다. https://minguhong.f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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