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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28호 - 김민종 Archive Footnotes

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28호 - 김민종 Archive Footnotes

편집: 디자인사학회
인터뷰: 김민종
진행: 홍주희
발행: 2025년 11월 15일

Q1. 이번 작업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면서, 특히 1970–80년대 디자인 문화가 이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당시 디자인의 어떤 측면이 작업의 중요한 영감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Quirk85〉는 에칼(ECAL, 로잔 예술 대학)의 서체디자인 석사과정 디플로마 프로젝트 중 하나로, 글자 형태를 통해 동아시아의 모더니즘 미학의 장르를 재방문하고 재해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20세기 CI 디자인에 매료되어 자료를 찾던 중, 쌍용그룹의 1978년 매뉴얼을 보았고, 한국에서 처음 그룹 스케일로 만들어진 기업 디자인 매뉴얼이라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모더니즘이 아직까지 시각 문화 전반에 강하게 작동하는 스위스에서 석사 과정을 이수하며 익힌 디자인 관점을 통해 동아시아의 모더니즘을 재해석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쌍용 프로젝트는 홍익대학교 총장을 지낸 권명광 선생님께서 총괄하시고 명계수 선생님께서 한글, 한자의 원도를 그렸습니다. 이 원도와 디자인 에셋은 안정적이고 단단한 인상 위에 회화적인 표현이 결합되어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현대적인 렌더링을 통한 재해석의 여지가 많다고 느꼈고, 그렇게 복각한 서체를 에디토리얼 및 그래픽 디자인의 도구로 쓰기로 했습니다. 한자 원도는 한글과 완벽히 다른 스타일로 그려졌고, 두 스크립트 디자인의 고유한 매력을 감각적이고 기술적으로 통합하기 위해 석사 과정을 함께했던 동료 중 가장 재능 있는 중국 태생의 타입 디자이너 주안준(Juanjun)에게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한국의 7, 80년대는 기업과 정부가 주도적으로 국가 경제 재건을 맡았던 시기이고, 그만큼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낸 시기입니다. 개인보다 조직과 사회가 우선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모든 생활의 면면이 목적 지향적인 규율로 통제되던 시기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산업 발전의 속도나 양상에 있어 중부유럽보다 자원이 풍부하진 않았지만, 당시 이러한 사회·문화적 특징과 결합해 한국에서도 모더니즘이 발전했고, 서구권과 시대정신을 상당 부분 공유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주도 경제 성장, 전후 국가 재건 프로젝트, 세계화로의 도약, 강력한 노동 집약성과 생산성의 강조, 조직을 위한 개인의 희생, 90년대까지 이어진 초상업화와 무한 경쟁, 신기술의 등장 등… 90년대까지 이어진 이 모더니즘의 가치가 사회에 엄청나게 빠른 변화를 만들었죠. 90년대생으로서 어렸지만 IMF 전, 후의 기억이 남아있어요. 부모님 세대가 힘들게 일하긴 하셨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와 환희로 가득 찼고, 저희 집은 합정동의 첫 빌라를 마련하기도 했죠. 허약한 체질에 미신처럼 먹었던 노마텐텐, 기계처럼 풀어냈던 눈높이 구몬 학습지… 모든 것들에 당시 사회가 추구하던 바가 자연스레 녹아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의 여러 심볼들이 기업 디자인과 관련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눈에 익어 DNA처럼 자리잡은 시각적 기억을 더듬어 글자나 그래픽의 형태를 통해 재생산하고, 현재의 재료로 재맥락화하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서체의 형태는 대부분 산업 환경에서 생산이 용이하도록 만들어졌으나, 다양한 기물 제작과 플리케이션 안에서 서체의 품질을 통제하는 것이 완벽히 자유롭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소화된 곡선 디테일을 유지하면서도 모듈 안에 파이프라인 형태로 글자를 그려 넣어야 하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의 제스쳐가 드러납니다. 규범이 많았으니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매우 창의적이고 개별적인 디자인 요소가 출현합니다. 이 형태들이 제 흥미를 끌었고요. 또한 기업(corporation) 관련 시각디자인은 제가 이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두고 다뤄온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시선으로 한국의 디자인 문화를 바라본 것이 작업의 출발점이었습니다.

Q2. 1970-80년대 동아시아에서 서구 모더니즘이 수용된 양상을 어떻게 재해석하고자 했는지 궁금합니다.
(1) 한글의 조형
조합형 문자인 한글은 로고 및 전용 서체를 다루는 방식이 라틴 스크립트를 다루는 방식보다 까다로웠을 것입니다. 또 세계화를 위해 많은 문안을 라틴어와 함께 병기해야 하는데 다국어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경험이 지금보다 훨씬 덜 축적되었을 때이니 어려움이 있었겠죠. 지금도 어려운데 유럽에서 출발한 언어를 한국의 사회적·인식적 환경에 맞게 시각적으로 이식하는 데 여러 논의가 필요했으리라 상상했습니다.

(2) 문화적 혼재
당시 여러 기업의 아이덴티티 매뉴얼을 살펴보면,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일본의 영향, ITC에서 유통하던 서체를 서브 세트로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 등에서 발견되는 미국의 영향 등 다양한 디자인 문법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시작된 모더니즘이라는 디자인 레거시가 일본에서 집요하고 공예적인 태도로, 미국에서는 거대한 상업화의 양상으로 확산습니다. 한국의 기업 정체성 디자인이 자본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국가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프리즘을 거쳐 유입된 모던 디자인을 한글 스크립트 기반으로 소화하고, 글로벌화하는 과제를 맡아야 했으니 여러 문화적 유입과 혼재 속에서 실용주의적이고 대담한 의사 결정들을 빠르게 해나가야 했을 것입니다.

(3) 조형 연습
당시 ‘디자인 학부’로 명명되기 이전에 관련 학과가 ‘도안과’라고 불렸다고 해요. 컴퓨터 이전부터 손으로 작도하고, 모듈과 같은 제약을 마주하며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툴을 변화시켜 온 세대의 조형은 지금의 것들보다 훨씬 명료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 재생산하는 모던 디자인의 레플리카와 비교해 보아도 기술적 편의성이 없는 당시의 환경이 조형의 본질에 충실하게 다가가기에 좋은 환경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처 다양한 문화적 유입과 충돌, 당시 한국 사회상, 교육 및 실무 문화의 다양한 의사결정 방식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진 문제 해결 및 타협의 방식이 서양의 것과 다른 독특한 시각 풍경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Q3. 작업에서 한글, 한자, 라틴 알파벳이 모두 등장합니다. 세 가지를 하나의 세트로 보여주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각각의 형태적 특성을 어떤 방식으로 조율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쌍용 디자인 매뉴얼 전용 서체 원도는 한글과 한자의 시각적 형태가 꽤 달랐고, 플리케이션을 살펴보면 두 언어는 같은 서체 세트로서 병치되기보다는 각 언어의 스타일을 잘 드러내며 독립적인 에셋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서체를 만들 때 한글과 한자 두 스크립트의 독투스(Doctus)가 모두 일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Quirk85〉는 모든 스크립트의 스타일이 같은 시스템으로 일치하는 서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오히려 서체를 미디엄 삼아 그래픽 디자인 및 시대적 시각 언어를 탐구하는 프로젝트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다른 두 형태의 시스템을 같은 세트 안에 공존하도록 두고 싶었습니다. 대신 서체 굵기(Weight)를 통합하면 사이니지 및 워드마크를 만드는 데 유용하기 때문에 한글 기준에 맞추어 한자 및 라틴 스크립트의 획을 재설계해 전반적인 먹의 농도를 균일하게 맞추기로 결정했습니다. 동시에 대담한 레터링 방식의 원도가 내뿜는 임팩트 있고 그래피컬한 인상을 잃지 않으면서 서체로서 작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한글·한자·라틴 모두 메트릭 수정 및 통합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라틴은 이 세 가지 스크립트 중 가장 고민 없이 작업했습니다. 한글과 한자 원도를 보자마자 주안과 함께 라틴 형태에 대한 합의를 빠르게 이루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거의 같았거든요. 취리히의 모던 디자인 레거시, 미국의 상업적 디자인, 동아시아적 미감으로 다시 해석된 일본의 미래주의적 모더니즘을 학습한 후 한글과 한자의 형태에 들어맞도록 디자인했습니다. 글로벌한 시각 언어이기 때문에, 답은 정해져 있었고 글자 형태를 감각적으로 결정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습니다. 물론 한글과 한자에 비해 간단하게 작업했다는 뜻입니다. 제 눈에 만족스러운 매트릭을 찾아 헤매는 데만 두어 달이 걸렸고, 지금도 라틴 활자를 계속해서 다시 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