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3호 - Gallery Interview
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3호 이예주 Gallery Interview
편집: 디자인사학회
인터뷰: 이예주
발행: 2023년 7월 15일
이예주 디자이너 인터뷰
Q. 도무송 프로젝트, 프린팅 메커니즘의 부산물을 뜻하는 ‘톰슨- 도무송’을 작업의 소재로 삼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졸업을 하자마자 동료들과 함께 충무로 지역에 작업실을 얻었어요. 인쇄소가 밀집된 충무로 작업실 주변 곳곳에서 ‘파지'를 보았고 이것이 도무송 공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파지'는 인쇄 공정에서 나온 부산물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의도로 만들어진 형태가 아니었어요. 시각 작업을 하는 저에게 ‘파지'의 불완전한 형태를 관찰하는 일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출근길과 산책길에 파지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인쇄소를 방문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며 도무송의 공정을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파지'는 도무송 공정을 마무리한 후, 버려지는 부산물이고 인쇄 공정 단계에 포함되지 않은 파생물이었지만 이것을 통해서 도무송의 인쇄 공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도무송의 인쇄 공정을 살펴보고 관찰하면서 단지 평면의 형태가 아닌 사물과 공간에서도 다양하게 표현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도무송은 인쇄 후가공이라는 인쇄 기법을 넘어서 저의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원리로 삼기에 충분히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Q. ‘도무송’이란 용어는 한국의 초기 인쇄가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시점부터 이어져 온 잔재이기도 합니다. 해당 용어를 프로젝트의 큰 타이틀로 활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A. 도무송은 평압 인쇄기를 이용해 원하는 모양대로 종이를 따내는 기계 이름 또는 이와 같은 인쇄 공정으로 제작하는 인쇄 후가공을 말해요. 특정 모양으로 잘라내기 위해서는 철제 형틀(die)을 만들어 원하는 재료에 압을 가하기 때문에 다이커팅(die cutting)으로도 불리죠. 말씀하신 것처럼 영국에서 개발된 기계, ‘톰프슨’의 발음이 일본으로 전해서 ‘도무송’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인쇄 용어 중에는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용어들을 상당 부분 현재에도 사용하고 있고 사용하고 있는 그 용어는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거로라고 생각해요. 이 인쇄 용어를 통해 시대상의 네거티브한 부분보다는 그 기술이 전해졌던 흐름과 ‘도무송’이라는 용어가 기계 이름과 인쇄 공정 이름이 혼재된 상태로 불리는 맥락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사실 도무송 프로젝트에서 ‘파지'는 마치 어떤 사건의 첫 번째 단서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오랜 시간 동안 ‘파지'를 수집하면서 일련의 규칙이나 개념을 적용해 실험했고 그 과정에서 이와 관련된 몇 권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세 권 정도의 책을 만든 뒤, 이것을 하나의 세트로 구성하기 위한 제목을 생각했을 때, 자연스럽게 ‘도무송'이 떠올랐습니다. 앞서 말한 용어에 대한 복합적인 맥락과 같이 이 프로젝트가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섞여 있기를 바랐습니다.
Q. 오랜 시간 우리가 알고 있었지만, 작업의 소재로 삼진 않았던 대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유희적인 태도와 다양한 매체로 풀어낸 것이 흥미롭습니다. 2D 그래픽으로 재가공하고 입체로 만들어 내는 등 여러 매체를 활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지금 생각해보면 ‘파지’를 처음 보았을 때, 단지 형태적인 호기심으로만 접근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쇄 후가공인 도무송은 종이의 공간을 사용해 그 기능을 만드는데, 단지 종이의 공간을 넘어서 어떤 다양한 가능성을 저도 모르게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머리와 몸이 반응한 부분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앞서 말씀드린 세 권의 책 이름은 각각 <3MM>, , 이고 제가 도무송 프로젝트에서 발견한 것들을 평면에서 사물과 공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실험을 반영한 책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 프로젝트가 사물과 공간으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매체를 활용하는 이유는 여러 매체에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 도무송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이 관점에서 보면,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 끊임없이 생기는데 ‘도무송 프로젝트’는 일종의 저만의 놀이터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웃음)
Q. 도무송의 형태 외에 흥미를 느낀 지점이 무엇인가요?
A. 도무송에서 형태가 생기는 이유는 상당 부분 기능적인 역할 때문입니다. ‘파지'가 제각각인 형태를 갖고 있지만 그 형태는 어떤 기능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무송의 부산물이잖아요. 물론 저의 놀이터(프로젝트)에서는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혹은 ‘파지'의 자유로운 형태에서 받는 영향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마음대로 무언가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 개념을 여러 차례 사물이나 공간으로 가져올 때, 인쇄 후가공 도무송의 기능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연결 지으려 해요. 놀이에서도 저마다의 규칙과 원리가 있어야 사람들이 그 놀이에 참여할 수 있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처럼요. 도무송의 개념을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로 예를 들면, 우편물에서 볼 수 있는 창봉투, 인스턴트 커피믹스의 절취선의 기능을 이것과 연결 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생각을 조금 더 넓게, 하지만 조금 더 마음대로 상상해보면 옷이나 가방에 단추를 끼워 넣을 수 있는 구멍, 거리의 맨홀 뚜껑 역시도 이 프로젝트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렇듯 어떤 경계를 구분 짓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지점이 꽤 흥미롭습니다.
Q. 인쇄를 기반으로 한 도무송의 문법이 영상이나 오브제(패션, 가구 등) 등 다른 영역에서 구현될 때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도무송 기법의 에센스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혹은 가장 다르게 번역되는
지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마찬가지로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도무송의 기능적인 역할입니다. 특히 사물과 공간에서 도무송을 해석할 때, 그 기능적인 부분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기기도 하고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에 영향을 주기도 하거든요. 저만의 놀이터이기는 하지만 놀이의 방법이 다양해질수록 그 규칙과 원리가 분명해야 조금 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패션과 가구는 어떤 기능을 하는 용도로써 만들어진 것이고 이와 같은 사물들은 공간과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다양한 관점으로 도무송의 개념을 적용해보려고 합니다. 다르게 번역되는 지점을 경계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유롭게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정리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편입니다.
Q. 인쇄 공정 중 발생하는 하나의 소재를 새로운 작업의 주제로 변환한 시도가 재밌습니다. 도무송 외 관심을 두는 아날로그적인 소재가 있나요?
A. 20세기 초 실험적인 애니메이션을 개척한 독일의 영화감독 로테 라이니거의 1929년 작품 <아흐마드 왕자의 모험>을 보면, 실루엣을 사용해 그림자극을 만들 수 있는 특수 촬영 테이블인 ‘트릭 테이블’과 여러 장의 패널을 중첩해서 다양한 배경을 표현할 수 있는 ‘멀티플레인 카메라'를 만들었어요. 인물과 배경을 그리고 오려서 만드는 방식은 지금의 제작 환경에서는 비효율적이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방법을 찾아서 스스로 만들고 구축해 나간 것이죠. 오히려 지금의 작업 환경에서 이 공정을 바라보았을 때,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요. 모든 미디어에는 시대에 따라서 발전되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상황과 맞물리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예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2015년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더배곳을 졸업하고 디자인 스튜디오 ‘예성 ENG’를 운영하고 있다. 개인전 〈UNUSED SPACE〉(한국, 2017), 〈3MM〉(한국, 2020)를 열었고 〈2018 광주 비엔날레〉(한국, 2018), 〈서울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타이포잔치〉(한국, 2019), 〈A.assemble〉(독일, 2021)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기억 박물관〉(2015), 〈DOMUSONG (SET)〉(2020)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