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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30호 - 구민호 Archive Footnotes

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30호 - 구민호 Archive Footnotes

편집: 디자인사학회
인터뷰: 구민호
진행: 홍주희
발행: 2026년 1월 15일

Q1. 『사진으로 보는 대구 80년』, 『북성로 오픈팩토리 1~3권』, 『남구 도시 기억 도큐멘타』 , 『지상대구』 등 지역을 기록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계십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대구라는 지역을 기록하게 된 개인적인 계기와, 이러한 작업들이 갖는 의미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독일에 후겐두벨(Hugendubel)이라는 서점 프랜차이즈가 있어요. 어디를 가든 보통 도시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는 대형 서점이에요. 유학 시절, 라이프치히 중심가에 있는 후겐두벨에 들어가서 라이프치히와 관련된 책들을 모아둔 서가를 둘러본 적이 있어요. 출판과 사진이 굉장히 발달한 곳이라 그런지, 도시의 역사를 담은 양질의 사진집들로 서가가 채워져 있었어요.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거기에 놓여 있는 책들과 그리고 그 서가가 너무나 아름다웠거든요. 어쩌면 이런 기록들이 라이프치히 사람들로 하여금, 도시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도록 만드는 근거나 원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서울이 아닌 도시의 역사와 현상은 사람들의 관심사 밖으로 밀려난 것 같아요. 심지어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도요.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배경부터 찾아보게 되잖아요. 문화에 대한 자긍심은 역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역사는 생각보다 사라지기 쉽거든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고, 기록을 게을리하면 생각보다 금방 사라집니다. 없던 일이 돼버리는 거죠. 특히, (아직까지는) 문서화되지 않은 기록은 휘발성이 강합니다. 저는 대구 역사를 항상 관심 있게 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요. 『사진으로 보는 대구 80년』과 『지상대구』를 작업하면서 느낀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제까지 접하지 못했던 사진과 자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었어요. 자꾸자꾸 끄집어내서 종이 위에 앉혀 놔야 해요. 관심이 없어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눈앞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관심에서 멀어지는 거예요. 사람들이 모두 서울 이야기만 하니까, 서울이 세상의 중심이라도 된 것 같잖아요.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서, 전시를 통해서 계속 도시의 역사를 소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2. 영남대학교 대학원 시각디자인 전공 학생들을 중심으로 기획된 담화 「대구는 시각 디자이너를 왜 활용하지 못하는가?」가 인상 깊었습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로서, 지역 사회와 디자인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시나요?
지역 사회와 디자인은 어쩔 수 없이 공생관계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지역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디자인만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근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모두가 비슷한 고난을 겪었지만, 코로나 이후 대구는 특히 더 혹독한 겨울을 지나왔습니다. 처음에 대구의 여러 문화 재단을 통폐합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조금 먼 세상의 이야기로 느껴졌었는데, 정말 눈 깜짝할 새에 빙하기가 온 도시를 뒤덮었어요. ‘컬러풀 대구’는 '파워풀 대구’에 비하면 정말 다채로운 슬로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역 사회가 얼어붙으면 내 지갑도 얼어붙는구나’라는 사실을 절실히 체감했습니다. 「대구는 시각 디자이너를 왜 활용하지 못하는가」 라는 담화를 할 때만 해도, '컬러풀 대구’를 비방할 목적으로 포스터의 컬러를 컬러풀 대구 시정 슬로건 로고의 색상에 맞춰서 설정했던 것 같아요. 당시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컬러풀 대구의 로고 색상을 교체한 것이 대구에서는 화제가 됐거든요.
어쨌든, 예술가들 그리고 디자이너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지면 그만큼 문화적 시도가 소원해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홍은 갔어도 그가 남긴 빨간 시정 슬로건 로고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이제 슬슬 얼음이 녹고 있는 것 같아요. 「대구는 시각 디자이너를 왜 활용하지 못하는가」 담화처럼 다시 한번 지역의 오늘과 내일을 논의해 보는 기회가 오면 좋겠습니다.

Q3. 훌라(Hoola), 정재완 디자이너, 그리고 다양한 지역 기획자·예술가들과의 협업이 작업 전반에 자주 등장합니다. 지역 기반 작업에서 ‘협업’은 어떤 역할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말 감사하게도 구김종이의 클라이언트, 혹은 협업자들 중 대부분은 대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획자, 예술가들입니다. 대구에서 소규모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건 상당히 고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훌륭한 파트너들이 있기 때문에 힘들어도 대구에서 활동을 계속 이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구는 재미있는 도시입니다. 제약도 많고, 문제도 많은 도시 임에는 이견이 없으나, 그로 인해 오히려 풀뿌리처럼 뭉쳐서 일어나는 끈적한 유대가 있는 곳입니다. 그중 대다수가 어렵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럼에도 돈보다 가치 있는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Q4. 《암흑의 날로부터》와 같이 기록을 목적으로 한 전시 작업에서, 디자인의 방향을 설정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기준이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연출을 맡았던 포스터 전시 《암흑의 날로부터》와 그리고 뒤편에서 열렸던 《빛나는 민주주의의 사물들》이라는 전시까지, 두 개의 전시 그래픽을 디자인하면서 초점을 맞췄던 그래픽 모티브는 당연하겠지만, 빛과 어둠이었습니다. 《암흑의 날로부터》는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걸어 나오는 민중의 자아를 형상화했습니다.
1975년 ‘암흑의 날’로부터 2025년 초까지 우리 민주주의가 지나온 반세기를 반추하는 포스터 전시의 메인 그래픽을 ‘어둠’에서 점차 ‘빛’으로 전개하는 ‘그러데이션’이 아닌 ‘핀 조명’으로 설정한 이유는 2025년 3월 전시를 준비하던 기간의 ‘현재’가 밝지만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암흑의 날로부터》의 그래픽은 사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맨발이 아니라, 계속 어두운 상황 속에서 ‘민중의 힘이 뭉쳐 잠시 드리운 빛’으로 인해 잠시 밝게 빛나는 그 찰나에 빛 속으로, 그리고 앞으로 내디딘 힘찬 발걸음입니다. 그리고 그 빛의 정체는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적 순간들을 함께 했던 사물들을 전시하는 《빛나는 민주주의의 사물들》 전시의 메인 그래픽에서 정체를 드러냅니다. 《빛나는 민주주의의 사물들》 포스터에서 이번 탄핵의 주역들이라 할 수 있는 응원봉들이 빛을 내며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록을 목적으로 한, 혹은 기억하기 위한 전시의 포스터를 만들 때는 ‘상징적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시민으로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것이 디자이너로서 남길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Q5. 대구라는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활동하며, 그래픽 디자이너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당면하는 난관들을 지나오면서 점점 스스로가 이 지역에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대구에서 ‘지역 맞춤형 인재’로 거듭나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고 해결 방안을 고민해 보는 것만으로 타인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로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구의 소규모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의 역사는 아직 짧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회사나 디자인 에이전시의 형태가 아니라, 소규모를 유지하는 소위 말하는 ‘스몰 스튜디오’ 형태의 등장은 길게 봐도 10여 년 정도라고 여겨집니다. 서울의 스몰 스튜디오가 디자인 시장의 다양한 요구에 가볍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나타난 필연적 형태였던 것과는 달리, 대구의 스몰 스튜디오는 대구 디자인 시장이 아직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에서 디자이너들의 삶의 형태가 먼저 변화했기 때문에 등장한, 말하자면 시장의 요구 없이 생겨난 공급입니다. 그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오류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막막했던 시작에 비해서 딱 그동안 헤쳐온 시간만큼 더 노련해졌고, 출발선에 선 누군가에게 딱 그만큼 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 것 같습니다.